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(문단 편집) == 원인 == 기본적으로 1997년 [[홍콩 반환]] 이후 [[홍콩]]에 대한 [[중국 공산당]]의 [[일국양제]] 침해는 계속되고 있었다. [[중영공동선언]]에 '''일국양제, 항인치항[* 港人治港. 홍콩(香港)은 홍콩 사람(港人)의 손으로 통치해야 한다.], 고도의 자치 보장'''을 넣었지만 [[덩샤오핑]] 이후 [[장쩌민]], [[후진타오]], [[시진핑]]으로 올수록 중국 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강화되었다.[* 참고로 [[1997년]] [[홍콩 반환]]식에 참석했던 [[찰스 왕세자]]는 반환식에서 '''"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것이 걱정스럽다"'''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. 그 이후 23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셈.] 이런 불만이 누적되어서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폭발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028&aid=0002457558|기사]]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25&aid=0002914797|기사2]] 이미 2003년에 퉁치화 전 행정장관이 추진했던 홍콩 기본법 23조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7월 1일 50만명이 시위를 벌였으며, 50만 시위에도 퉁 전 장관은 국가보안법 강행 의사를 밝혔지만,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'민간인권전선'이 7월 9일 입법회를 포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자 결국 '백기'를 들고 말았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1/0010894105|#]] 직접한 계기는 대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. 2019년 2월 대만에서 한 홍콩인 남자가 같은 홍콩인 여자 친구[* 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고 당시 피살한 여자는 임신 중이었다.]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. 사건 이후 범인은 홍콩으로 도피하였고 이에 대만 당국은 홍콩에 이 살인범을 인도하라고 요청했다.[* 시위가 격화하자 6월 11일에 대만 총통 차이잉원이 사건의 단초가 되었던 홍콩인 용의자를 홍콩에서 이 법으로 송환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.]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고 속지주의를 적용하는 홍콩 형법상 홍콩 바깥에서 살인한 범죄인을 홍콩에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도 없었는데[* 절도 등의 혐의만 적용하여 고작 징역 29개월의 형이 내려졌다. 대만에서 37년 6개월짜리 지명수배령을 내렸으나 이 범인이 37년 6개월간 대만이나 대만과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은 국가 및 지역으로 가지 않는다면 살인죄에 관해 아무것도 처벌받지 않는다. 결국 2019년 10월 23일 석방되었다. --인간 쓰레기 살인범이 운 좋게 정치질에 말려들어서 개이득인 상황이 됐다.--][* 다행히 이름(찬퉁카이)과 얼굴은 공개된 상태이다.], 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범죄인의 외국 송환을 쉽게 하려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게 된다. 문제는 홍콩인들이 이 법이 이번 사건과 같은 형사사건 해결이 아니라 중국으로의 정치범 송환에 쓰이리라고 강하게 우려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. [[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3496482|#]] 그렇다면 중국 본토를 제외한 대만과만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, 그건 [[하나의 중국]] 때문에 힘들다. 홍콩에서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. 자세한 사항은 바로 아래 문단의 [[홍콩 범죄인 인도법안]]을 참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